새로운 경험

은둔끝 - 여행과 경험은 최고존엄

시바카오 2023. 2. 23.

 

은둔의 끝, 나 다운 나로 살아가기를 시작하는 신호탄.

 

만남 일정을 만들었음.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형제처럼 지내던 형님과 거의 1년만에 잡은 식사 약속.

 

형은 내가 유학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라도 한 번 섞을 기회가 있었겠나 싶을만큼 다른 환경에서 레베루가 다른 삶을 살아온분임.

 

이렇게 맺은 인연들과 '어울리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에,

 

나 또한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인연'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이렇게 아둥 바둥 사는 것.

 

넓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 했더라면 그 이전의 나였다면,

충분히 만족하고 안주해도 될 만한 환경에서도 결코 만족 할 수 없는 이유임.

(이게 도대체 불행인지 축복인지는 결말을 봐야 알듯)

 

각설하고,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여행'과 '환경'이 나의 인생을 결정짓는 '전부'라 봐도 무방할 키워드와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됨.

 

'여행'과 '경험'은 내 인생에서 '고조~ 장군님과 같은 최고조넘이다~' 이말이야.

 

나는 점을 치지 않는다.

 

그러나 명리학을 기반으로 '운'을, 나에게 곧 펼쳐질 '현상'들을 '점' 쳐 보기는 한다.

(이게 점이라면 점이지만, 눈에 보이는 근거가 없는 '신점'과는 명백하게 다르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사주팔자'를 볼 자격이 있는지,

 

상담가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반성을 근래에 깊게 했음.

 

나는 다시 한 번 다가올 운명을 예상하거나 피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임.

 

자진해서 시궁창에 들어갔음. 

 

시궁창인지 몰랐음.

 

은둔형 외톨이 같은 생활을 몇개월 했음.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맞지 않는 환경에서 고통을 받았음.

 

마치 사막에 사는 낙타가 수영을 배우며 나는 왜 수영을 못하냐며 우울해했음...

 

스스로를 갉아먹게 하는 환경에 나를 스스로 밀어 넣었음.

('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눈을 흐리게하는, 앞을 흐리는 안개 같은 운이 흐르는 시기에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수년간 공부를 했음에도 스스로의 앞을 보지 못 한다는 것을 알았음.

 

나는 여전히 똥인지 된장인지 찍먹해봐야 아는 困而知之곤이지지자.

 

명리학을 공부했다고 오만함을 가질수도 있었음.

 

겉핥기만큼 공부한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나는 오만함에 대한 경계심을 다시 갖게 됨.

 

명리학 상담가를 자처하며 푼돈을 벌어들이던 시기를 지나며 내가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신기하지.

 

그렇다고 뭐 코딩 공부를 접을 건 아님.

 

어쨌든 앞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소양이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신하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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